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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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윤고산수적 및 관계문서(尹孤山 手蹟 및 關係文書)

본문

◆ 지정번호 : 보물 제482호

◆ 지정일시 : 1968. 12. 19

◆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윤씨종가

◆ 시 대 : 조선시대

◆ 재 료 : 한지

◆ 종 류 : 필사본기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조작가인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직접 손으로 쓰거나, 엮어 펴낸 수적들과 선생과 관계된 여러 문헌들이다. 윤선도는 8살되던 해에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어 해남으로 내려가 살았다. 20세에 승보시(升補試)에 1등으로 합격하여, 1616년 성균관유생으로서 집권세력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함경도로 유배되었다. 벼슬을 버리고 내려온 후에는 조상이 물려준 엄청난 재산으로 정치와는 관계없이 보길도의 부용동과 새로 찾은 금쇄동에 여러 정자와 각을 지어놓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수적으로는 『금쇄동집고 金鎖洞集古』·『금쇄동기 金鎖洞記』·『산중신곡 山中新曲』이 있다.

『금쇄동집고』는 윤선도가 금쇄동에서 지내면서 도연명(陶淵明)·이백(李白)·백거이(白居易) 등 중국의 여러 시인들의 시구를 모아 손수 쓴 것과, 그가 쓴 한시, 그리고 우리말로 된 단가를 모아 한 첩으로 묶은 것이다.『금쇄동기』역시 금쇄동에 지내면서 지은 한시를 묶은 것이며,『산중신곡』은 자신이 보길도와 금쇄동에서 있을 때 그의 힘든 생활을 풍자섞인 내용을 담아 지은 단가를 모아놓은 것으로 「만흥 漫興」·「조무요 朝霧謠」·「오우가 五友歌」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 국문학적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윤선도와 관계된 문서 가운데『은사첩』2권은 인조와 봉림대군(후의 효종)이 선생의 집에 여러 곡식을 내린 것을 기록한 송장을 모아 엮어 첩으로 만든 것이며,『예조입안』은 윤유심의 둘째 아들인 선도를 윤유심의 형인 윤유기에게 양자로 들이는 것을 예조에게 허가하는 문서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가족제도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 책과 문서들은 고산 윤선도의 개인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1.금쇄동집고:
윤선도가 금쇄동에서 은거생활을 하면서 도연맹, 이백, 백거 이, 위응물등 중국시인들의 시구를 모아 자필로 쓴것이다.

2.금쇄 동기:
금쇄동에 은거하면서 지은 한시를 모은 것인데 역시 자필본이다.

3.산중 신곡:
윤고산이 보길도, 금쇄동 등지에 기거하면서 불우한 자신의 내용을 담은 단가 20편을 모은 것이다.

4.은사첩:
인조와 봉림대군(효종)이 윤선도가에 미, 포, 잡물, 등을 사급한 사송장을 모은 것이다.

5.예조입안:
만력30년(신조35년 1602) 6월초 2일에 윤유실의 제이가인 선도를 윤유실의 형인 유기에게 양자로 들일것을 예조에게 허가한 결재문서다.
이는 조선시대 가족제도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