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문화재

기념물해남 맹진리 암각 매향비

본문

◆ 지정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제137호

◆ 지정일시 : 1990. 12. 5

◆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산96

◆ 시 대 : 조선시대

◆ 규 모 : 1기

◆ 종 류 : 금석문
매향비는 「매향」을 하면서 그 연유와 그 시기, 장소, 관련된 사람(집단)을 기록하는 비문을 말한다. 「매향」은 향을 묻는 민간 불교의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미래 구복적인 성향이 강한 미륵신앙의 한 형태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매향비에 나타난 발원형태는 모두 미륵하생신앙과 연결된다. 즉 매침한 향을 매개체로 하여 발원자와 하생한 미륵이 연결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해남 매향암각문은 마산면 맹진리 만대산 북서쪽 능선에 있는 속칭 「장군바위」에 음각되어 있다. 장군바위 뒷편 작은 틈사이(위부분 너비 50∼60㎝, 아래부분 너비 150㎝) 70°정도 내경화된 자연 암벽에 세로로 10행 59자가 음각되어 있다. 글씨는 마멸되지 않아 매우 양호한 편이다.

그 내용은 「竹山縣東 村座貝浦 埋香置彌陀香 徒五十八上堂一百 千八同發願碑文 永樂四年丙戌三月 二十三日立碑 主法覺因緣化 惠觀木衆生小明 五百步」인데 대략 죽산현의 동쪽 패포에 미타향도 58명과 상당마을 주민 백명이 함께 모여 매향을 행하였다. 1406년(영락 4년, 태종 6년)에 세웠고, 이 매향의식은 법당의 주관하에 혜관등이 참여하였다」이다.

이 비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향도의 숫자(조직의 규모)와 향도(香徒)와 상당민 백인과의 상호 관계이다. 즉 이 매향의식이 순수 민간신앙 결사로 볼 수 있는 향도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이다. 고려조의 경우 향도조직은 천여명을 넘는 거군적인 것이면서 행정조직과도 밀착된 것이었다. 이는 고성의 삼일포 매향비나 매향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의 규모는 분화·축소되어 고려말기와 조선초기에는 자연촌을 중심으로 소규모 촌락 공동체적 성격을 갖게되어 불교적인 본래의 기능은 퇴색되어 순수민간신앙 결사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점에서 미타향토 58인이라는 명시는 매우 중요한 예이다.

전남에는 7∼8개소의 매향비가 발견되는데 모두가 여말선초에 해당된다. 이는 이지역이 왜구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당하는 것과 연관지어 미래구복적인 매향의식이 성행하게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들 매향비 중에서 해남 매향비가 가장 상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