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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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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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시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고대 해남문화의 요람은 백포만 연안의 철기시대 문화이며 군곡패총 세력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북진하여 영산강 문화에 합류하여 그 기반이 되거나 영향을 주고 남진하여 제주와 동진하여 삼천포에 이르는 가운데 중국 한대(漢代)의 신(新)과 교역하는 등 이 지역에 마한 국읍세력의 일대세력을 출현시키는데 충분한 요소가 되었다.

  마한소국의 하나인 소위건국(素謂建國)이 그것으로 이 소위건국은 그 이름이 백제에서 새금(塞琴)으로 바뀌어 백제가 그 변두리에 개설하게 되는 현명(縣名)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이 소위건국과 층서관계에 있으면서 독자적인 소국세력을 형성하여 활동하던 것에는 지금 해남읍과 삼산면의 옹관묘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옥녀봉토성세력 인「사라(紗羅)」가 있고, 또 마산, 산이, 계곡의 해안에 걸치는 고성(산이면 노송리)세력인「고서이(古西伊)」가 있는데 고서이는 아직 확정하기 어렵다.
  이 밖에도 옥천지역에 부족국가세력에 머물면서 토착세력을 형상하여 살았거나, 또는 고서이와 어떤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냉천(冷泉)」· 「신갈(神葛)」·「팔마(八馬)」등이 있으나 그 성격과 실상 파악은 아직 미진한 상태이다.

  이 시기의 이변은 북일면의 전방후원분 세력이다. 강성한 고분세력을 반영하는 이 지역에서도 하나의 국읍이 인정되는데 토착기반이 엉성한 형편에서의 갑작스런 출현이 이채롭다. 아마도 삼국기의 어떤 형편에 의해서 이동한 세력인 마한의 주축이 여기에 이르러 그 마지막 패망을 기다리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해보고 있다.